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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모기' 박지성은 피를로를 어떻게 막았나

by 나초미쵸 2020. 4. 13.
-기자
당신은 지금까지 수준 높은 많은 선수들을 만나왔다. 그중에서 분야별 최고의 선수를 꼽는다면 누가 있는가?

-피를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선수는 호나우지뉴,
최고의 선수는 메시,
최고의 동료는 가투소,
최고의 수비수는 네스타,
그리고 가장 번거로웠던 선수는 박지성이었다.
                                                                                           
                                                                                            -피를로 고별전 기자회견 중-

 

안드레아 피를로와 박지성

 

안드레아 피를로는 그의 은퇴 경기를 치르기 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기자회견 도중 한 기자는 피를로가 만났던 선수 중 분야별 최고의 선수를 꼽아달라고 질의했습니다. 이에 피를로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호나우지뉴, 최고는 메시, 동료로서는 가투소, 수비에서는 네스타 마지막으로 가장 번거로운 상대로는 박지성을 꼽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피를로가 가장 번거로웠던 상대로 박지성을 선정한 이유는 다 있었습니다. 때는 2010년 2월 16일 챔피언스리그 16강이었습니다. 

 

1차전

AC 밀란 선발 라인업

 

피를로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이른바 레지스타 롤을 부여받았습니다. 레지스타는 후방에서 팀의 빌드업을 담당하는 선수로 공격의 활로를 터주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당시 피를로는 레지스타 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특히 후방에서 전방으로 보내는 자로 잰 듯한 로빙 스루 패스는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발 라인업

 

박지성은 왼쪽 윙어로 나섰지만 실상은 프리롤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피를로를 전담 마크하라는 롤을 부여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AC 밀란의 심장부를 봉쇄하면 상대가 전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피를로는 경기장 매우 깊숙한 지역에서 공을 전개했기 때문에 이 전술이 통할 지는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박지성은 수비형 윙어로서의 진면모를 발휘했습니다.

 

 

박지성은 경기 휘술이 울리자마자 피를로를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사진을 보시면 패스를 받으려는 피를로에게 빠르게 다가가는 모습입니다.

 

 

다음은 루즈볼이 된 상태에서 피를로에게 가는 공을 박지성이 태클로 끊어내는 장면입니다. 박지성의 순간 집중력과 순발력이 매우 돋보였습니다.

 

 

경기 중후반까지 박지성에게 시달린 피를로는 미들 서드 중앙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무것도 없자 좌우 측면으로 이동해 활동 반경을 넓게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그와 사랑에 빠진 것 마냥 계속 좇아 다녔습니다. 

 

 

박지성은 호나우지뉴를 막다가도 피를로에게 공이 갔을 때 무서운 속도로 그를 따라잡았습니다. 한편, 박지성이 다가오는 것을 의식한 피를로는 공을 바삐 처리하다가 결국 패스 미스로 이어졌습니다.

 

 

다음은 피를로의 패스미스와 연결되는 장면입니다. 피를로의 패스를 낚아챈 리오 퍼디난드는 곧바로 박지성에게 패스를 연결했습니다. 박지성은 피를로를 등지고 있다가 퍼디난드가 내준 패스를 세우지 않고 공의 흐름대로 몸의 방향을 돌려 피를로를 가볍게 제치는 장면도 연출했습니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수비적인 임무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공격적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피를로를 꽁꽁 묶었다는 점에서 영국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퍼디난드는 유로 2012 8강전이 끝나고 트위터를 통해 피를로의 플레이에 대한 극찬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박지성을 언급하며 "Ji는 산 시로에서 맨마킹의 진수를 보여줬다. 피를로는 그날 밤 꿈에서도 박지성에게 좇기고 있었을 것이다."라며 이날의 박지성을 회상했습니다.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발 라인업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 이어서 2차전에서도 선발로 출전했습니다. 다만 포지션에서의 변화는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후방 플레이 메이커로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마이클 캐릭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그의 부재를 안토니오 발렌시아로 대체했기 때문에 박지성은 1선에서 2선으로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박지성의 롤은 1차전과 마찬가지로 '피를로 봉쇄'였습니다.

 

AC 밀란 선발 라인업

 

한편, AC 밀란 감독 베르나르두는 '피를로 살리기' 작전에 나섰습니다. 1차전에서는 베컴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전했으나, 2차전에서는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플라미니를 투입시켰습니다. 플리미니와 마찬가지로 체력이 뛰어난 암브로시니를 피를로의 옆에 배치시킴으로써 피를로에게 향하는 주의를 분산시키고자 했습니다. 

 

 

박지성은 어김없이 공을 잡은 피를로를 향해 강하게 압박을 가했습니다. 피를로는 몸의 방향을 맨유 쪽 진영으로 전환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횡패스나 백패스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비디치의 헤더를 받은 나니는 피를로와 아바테 사이에 있던 박지성을 향해 패스를 넣어주려고 시도했으나 피를로에 의해 차단 당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박지성으로부터 멀어진 피를로는 주저 않고 슈팅을 날렸습니다. 공은 무회전 상태로 뻗어나가 공의 궤적이 계속 변했으나 골키퍼 반 데 사르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잘 막아냈습니다. 

 

 

박지성을 피해 왼쪽으로 이동한 피를로는 대런 플래처와 대치상황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플레처는 피를로의 터닝 동작에 속아 거리를 내줬고 이에 박지성은 다급하게 협력수비를 하기 위해 왼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공은 피를로부터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피를로가 맨유 수비 뒷공간으로 보내준 패스는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경기 도중 피를로는 박지성의 마크를 따돌렸을 때 좋은 찬스를 만들어내고는 했습니다.

 

 

후반 5분, 시드로프의 헤더가 피를로에게 향할 것을 예측한 박지성은 무서운 속도로 피를로를 향해 질주했습니다.

 

 

박지성은 공이 피를로의 발 끝에 닿기도 전에 발을 쭉 뻗어 가로채기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박지성은 반대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토니오 발렌시아에게 패스를 넣어줘 팀의 역습을 도모했습니다. 

 

 

경기가 중·후반으로 접어들었을 무렵에도 박지성의 피를로에 대한 추격의 의지는 식지 않았습니다. 피를로가 패스를 건네받으려 하자 박지성은 그의 뒤에서 소리 없이 귀신처럼 다가갔습니다.

 

 

피를로는 뒤늦게 후면에서 박지성이 따라붙은 것을 인지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박지성은 피를로와의 끈질긴 몸싸움 끝에 피를로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공 소유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날 박지성은 풀타임을 소화했고 팀의 3번째 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박지성은 중앙 지역의 공간을 지배한다는 의미로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에 빗대어 센트럴 팍(Centeral Park)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박지성을 향한 말말말

나는 박지성을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에서 마주했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한국 대표팀에서 매우 중요한 선수다. 그는 완벽하다. -리오넬 메시-
박지성은 어느 경기에서든 큰 영향력을 미친다. 또 에너지가 넘치며 현명하고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한다. 박지성이 질주하기 시작하면 상대는 어찌해할 줄을 몰라 당황해한다. -웨인 루니-
박지성은 훈련장에서 마치 유령 같다. 그는 훈련도 실전같이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를 상대로 훈련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파트리스 에브라-
박지성은 유럽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다. 내게 베스트 일레븐을 뽑는 상황이 온다면 왼쪽 윙은 주저 않고 박지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마르크 반 붐멜-
내가 만난 박지성은 모기 같다. 제쳤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내 앞을 다시 가로막고 있고 또 제치면 또다시 와있다. 그는 훌륭한 선수다. -젠나로 가투소-
무슨 표현이 필요하겠는가. 박지성은 내가 발굴한 최고의 선수다. -거스 히딩크-
박지성은 팀을 위한 헌신을 알고 축구 지능이 매우 뛰어나 축구선수로서 훌륭하다. 그는 결코 우리가 패배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알렉스 퍼거슨-
우연은 그저 자연 발생적인 것이지만 행운은 직접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박지성-

 

박지성

 

사진=Hoang 1991, smart tv 유튜브 캡처, manchestereveningnews.com, Hoang 1991, TFD Teh 유튜브 영상 캡처, Pundit Fe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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