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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말디니, 바레시> 영구 결번을 소유한 축구선수 1편!

by 나초미쵸 2020. 4. 1.

파울로 말디니 (AC 밀란, NO.3)

"대전 상대는 적이 아니다. 같은 그라운드 위에서 싸우는 동료다."-파울로 말디니

 

파울로 말디니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천재 수비수 파울로 말디니는 '원클럽맨'으로 AC 밀란에서 그가 머물렀던 기간은 자그마치 31년(유스 포함)입니다. 

 

그는 17살에 팀의 주전 수비수로 중용, 1987/88 시즌 '축구 전술의 아버지' 아르고 사키 감독 체제에서 일명 '밀란 제너레이션'을 일으킵니다. 밀란은 그 시즌에 단 14골만 허용, 그다음 시즌에는 유러피안컵 2연패 수령, 1993/94 시즌에는 무패 우승을 달성합니다.

 

2002/03 시즌 말디니는 팀의 베테랑으로서 주장을 임명받았고 뛰어난 통솔력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그는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하이 커리어를 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4/05 시즌 밀란은 야프 스탐을 영입하면서 그 유명한 '말네스카'라인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이 라인은 네스타의 잦은 부상 이탈로 자주 가동되지 못하고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2006/07 시즌 밀란은 카카의 맹활약에 힘입어 오랜만에 빅이어를 들어 올렸으나, 동시에 주장 말디니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란이 리그에서 5위를 하는 등 팀 성적이 점점 하향 곡선을 타자 그는 팀과 재계약을 하기로 결심해 2009년 40세의 나이까지 팀에 몸을 담고 은퇴했습니다.

 

말디니는 밀란에서 초반에 왼쪽 풀백으로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고, 나중에는 오른쪽 풀백 자리도 소화했습니다. 그의 원래 주발은 오른발이지만 양발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매일 연습한 결과 양발잡이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그는 정점에 다다른 수비력 못지않게 공격력도 두말할 것 없이 최고였습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발잡이에다가 개인기도 뛰어났기 때문에 공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했습니다.. 그와 함께 경기를 뛴 적이 있는 공격수, 호나우지뉴, 세브첸코, 굴리트 등 모두 하나 같이 그의 공격 능력은 엄청나다고 표현했습니다.

 

파울로 말디니 선수 커리어

 

프랑코 바레시 (AC 밀란, NO. 6)

"도저히 수비할 수 없는 선수가 나타날 때 은퇴하겠다." -프랑코 바레시

 

프랑코 베라시

프랑코 바레시도 말디니와 마찬가지로 AC 밀란 '원클럽맨'입니다. 그는 25년(유스 포함) 동안 AC 밀란과 함께 했으며 팀의 강등 속에서도 끝까지 팀의 리더로서 포기하지 않는 면모를 보였습니다.

 

밀란은 SSC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승부조작 혐의로 곧바로 세리에 B로 강등, 팀의 주축 선수들은 승부조작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기 싫어 이적을 강행, 이로 인해 전력 약화가 찾아온 밀란은 재차 세리에 B로 강등되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팀과의 의리를 져버리지 않은 바레시는 팀을 다시 세리에 A로 복귀시켰습니다.

 

그 이후 아르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가 새로 이끄는 AC 밀란은 유럽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유능한 감독들 밑에서 세월을 보낸 바레시는 1989년 UEFA 컵, 세리에 A 우승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2위에 오릅니다.

 

AC 밀란은 1991년 이후 경기력 부진으로 컵 대회에서 아무 성적도 내지 못하고 있던 중, 1994년 FC 바르셀로나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4-0으로 격파해 구겨진 자존심 회복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황금기에는 언제나 끝이 있는 법. AC 밀란은 바레시를 포함한 '밀란 제너레이션' 대부분이 30줄을 넘기게 되면서 유럽 대항전에서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바레시는 1997년까지 팀에 잔류했으며, 그해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가 은퇴하고 난 2년 뒤, 1999년에 AC 밀란은 그를 팀의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합니다. 반 바스텐, 굴리트, 레이카르트, 안첼로티, 말디니 등 엄청난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그 영광은 오직 바레시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역대 최고의 리베로 3명 가운데 하나로 리베로의 창시자 프란츠 바켄바워,  90년대 마지막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와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바레시는 발밑, 제공권, 시야, 리더십 등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전설의 수비수로 남았으며, 특히 수비 조직을 조율하는 능력에 관해서는 감히 그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코 바레시 선수 커리어

 

 

좌: 파울로 말디니, 우: 프랑코 바레시

 

 

사진=hadalsame.com, acmilan.com, fifa.com, opta, sempremil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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