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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알고 보면 공격수 공장] 토트넘 레전드 공격수(스트라이커) 계보

by 나초미쵸 2022. 7. 13.

유난히 타 빅클럽들에 비해 트로피 수가 적은 토트넘이지만, 공격수 배출에 있어선 여느 클럽 남부럽지 않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에는 마틴 치버스, 지미 그리브스 같은 전설적인 공격수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프리미어리그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이 즐비했다.

 

또한 토트넘 팬들이 보낸 무한한 신뢰 덕에 클럽을 자기 발로 떠났다가 다시 리턴하는 경우도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토트넘은 선수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테디 셰링엄(1992~1997, 2001~2003)

테디 셰링엄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정석이라고 할 만한 테디 셰링엄은 밀월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1983년부터 1991년까지 총 111골을 기록했다. 

 

중소 클럽에서 실력을 발휘하니 1부 리그 소속이었던 노팅엄 포레스트는 셰링엄을 영입했다. 그리고 수준 높은 무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그는 토트넘과 계약을 체결했다.

 

셰링엄은 첫 시즌에 38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으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작성했다. 그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뛰는 동안 고든 듀리, 로니 로젠탈, 위르겐 클린스만 그리고 크리스 암스트롱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본인이 직접 마무리했다.

 

이후 에릭 칸토나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스트라이커 자리에 긴급 수혈이 필요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셰링엄을 영입했다. 맨유에서 5년 동안 트레블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등 팀에 헌신한 셰링엄은 친정팀의 부름에 다시 토트넘으로 컴백했다.

테디 셰링엄 토트넘 스탯

264경기 113골 36어시

커리어 하이(1992-93 시즌)

49경기 27골 11어시

 

위르겐 클린스만(1994~1995, 1997~1998)

위르겐 클린스만

위르겐 클린스만은 1994-95 시즌 개막 전, AS 모나코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당시 클린스만은 다이버로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토트넘 팬들의 시선을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실력으로써 팬들의 마음을 돌렸다.

 

클린스만은 온몸을 무기로 삼아 프리미어리그를 폭격했다. 그는 금세 프리미어리그의 대스타 반열에 올랐고, 15만 벌이 넘는 저지를 팔아 치웠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단 한 시즌 만에 자국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이후 삼프도리아로 이적한 뒤, 다시 토트넘으로 6개월 단기 임대 계약으로 리턴했다.

 

이 당시 토트넘은 강등권에 허덕일 정도로 빈약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클린스만의 등장과 동시에 토트넘은 귀신같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특히 클린스만은 37라운드 윔블던과의 경기에서 네 골을 몰아치면서 6-2 대승을 견인했다. 결국 클린스만의 활약 속에 토트넘은 기적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토트넘 스탯

66경기 38골 15어시

커리어 하이(1992-93 시즌)

50경기 29골 14어시

 

로비 킨(2002~2008, 2009~2011)

로비 킨

로비 킨은 코벤트리 시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터 밀란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 밀란에서 13경기 3골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떠났다. 킨은 리즈에서 경기 당 0.5골을 넣는 활약을 펼쳐 리즈는 그를 완전 영입한다.

 

그러나 임대 시절 보여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킨의 폼은 저하되었고, 리즈는 중위권 성적을 기록하던 토트넘으로 킨을 방출했다.

 

그런데 킨은 그동안의 부진을 씻어내고 잠재되어 있던 기량이 토트넘에서 만개했다. 토트넘 역사상 10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17명밖에 되지 않는데 킨은 그에 속하고, 300경기 넘게 출전했다.

 

2006년에 토트넘이 베르바토프를 영입하고, 킨은 베르바토프와 투 톱으로 나섰다. 이 둘은 리그를 호령하는 최고의 투 톱으로서 토트넘의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2008년에는 토트넘의 2000년대 첫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로비 킨 토트넘 스탯

306경기 122골 26어시

커리어 하이(2007-08 시즌)

54경기 23골 8어시

 

저메인 데포(2004~2008, 2009~2014)

저메인 데포

저메인 데포는 누가 뭐래도 토트넘 레전드이다. 데포는 토트넘 이적 초창기 시절 로비 킨과 돌풍을 만들었지만, 베르바토프의 등장으로 인해 주전에서 교체 멤버로 밀려났다. 이후 감독과의 불화와 새로운 경쟁자 대런 벤트의 출현에 결국 데포는 타 팀으로 이적을 결심한다.

 

그런데 이적팀 포츠머스에서 피터 크라우치와 빅 앤 스몰 조합으로 맹활약하고, 당시 포츠머스 감독 해리 래드냅과 함께 한 시즌 만에 토트넘으로 회향한다.

 

2009-10 시즌에는 포츠머스에서 호흡을 맞춘 피터 크라우치와 다시 재결합했고, 팀의 전력도 뛰어나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그다음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처참한 성적을 보였다. 그래도 이후 두 시즌에서 리그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저메인 데포 토트넘 스탯

362경기 143골 32어시

커리어 하이(2009-10 시즌)

43경기 24골 5어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006~2008)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아름답고 간결한 볼터치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그는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입지를 다지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고, 2001-02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리그 준우승, DFB 포칼 준우승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

 

레버쿠젠 마지막 두 시즌, 리그에서만 20골 이상을 기록한 베르바토프는 토트넘의 적극적인 구애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지금보다 경기 템포가 훨씬 빠르고 거칠기로 유명했다. 그런 곳에서 베르바토프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보란 듯이 그 의구심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빠르지 않아도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베르바토프는 전방에서 서성이다가 패스 활로가 영 개척되지 않을 경우, 볼을 받으러 내려와 줬다. 그리고 이어진 상황에서 아론 레넌, 로비 킨 같은 발 빠른 선수들이 전방으로 뛰어가면 기막힌 침투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를 곧잘 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토트넘 스탯

102경기 46골 27어시

커리어 하이(2006-07 시즌)

49경기 23골 15어시

 

해리 케인(2011~)

해리 케인

해리 케인은 21세기 토트넘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임대 생활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21살에 프리미어리그 득점 순위 2위(21골)에 오르고, PFA 영 플레이어상, PFA 올해의 팀을 수상하면서 이미 완성형 공격수임을 증명했다.

 

한편, 케인은 원래 골을 독식하는 플레이에 치중했다. 1.5선으로 내려오지 않고, 전방에 머무르다가 패스를 받고 득점하는 패턴으로 경기에 임했다. 또 크리스티안 에릭센이라는 훌륭한 플레이메이커가 있어 케인은 골 네트를 가르는 데만 집중하면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DESK 라인은 붕괴되고, 팀의 중심이 된 손흥민과 케인은 공격을 둘이서 이끌어갔다. 그리고 이때 케인은 어시스트에도 눈을 뜨기 시작한다.

 

20-21 시즌에는 골든부트(23골)와 플레이메이커상(14도움)을 동시에 석권하고, 21-22 시즌에는 손흥민과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합작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이 둘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해리 케인 토트넘 스탯

66경기 38골 15어시

커리어 하이(2020-21 시즌)

385경기 247골 59어시

히샬리송

최근 토트넘은 히샬리송이라는 젊고 좋은 스트라이커 자원을 영입했다. 그는 험한 인상과는 달리 팬서비스도 좋고, 인성도 갖췄다고 한다. 이 선수가 앞으로 케인의 뒤를 이을 토트넘의 미래가 될 것인지 많은 이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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