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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 갈 수록 어지럽다] 맨유 프리미어리그 주장 계보

by 나초미쵸 2022. 6. 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광과 비극의 시대에 있던 주장들은 팀 상황이 어땠든 간에 최선을 다해 팀을 이끌었다. 비록 몇 명은 팬들의 가슴에 기억되고, 몇 명은 그 모습이 희미해졌지만 말이다.

1980년대 초반, 브라이언 롭슨은 롯 애킨슨으로부터 주장 임명을 받았다. 앳킨슨은 롭슨을 맨유로 데려오기 위해 잉글랜드 역대 최고 이적료를 깨고 웨스트 브롬에서 데려온 천재 미드필더다.

바비 롭슨


라이벌 리버풀의 레전드 감독 빌 샹클리도 앳킨슨에게 '10원이라도 끌어 모아서 롭슨을 사라'며 조언했다고 한다.

롭슨은 그 기대에 부응하 듯 퍼거슨 감독에게 첫 우승 트로피(1990 FA컵)를 안겨다 주었다.

롭슨은 맨유에서 466경기와 99골을 넣었다. 맨유에서 12년 동안 주장 역할을 소화했고, 마지막 2년 동안은 스티브 브루스와 주장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해냈다.

그렇다면 롭슨 이후 '프리미어리그 시절의 맨유 주장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스티브 브루스(1992~1996)

스티브 브루스

스티브 브루스는 앞서 말했듯이 롭슨이 팀을 떠나기 2년 전, 즉 1992년부터 주장직을 롭슨과 함께 맡았다. 브루스는 센터백으로서 팀을 위해서라면 단단한 벽을 뚫은 것 같은 기세로 팀에 헌신했다. 그는 414경기에 나섰고, 1995-96 시즌에 팀이 더블을 달성하는 데 공헌했다.

또한 1992-93 시즌 막바지에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맞대결에서 팀이 1-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 브루스는 혼자 두 골을 넣었다. 그로 인해 맨유는 아스톤 빌라를 제치고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라섰고, 팀은 26년 만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중심에 브루스가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맨유를 응원했던 이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에릭 칸토나(1996~1997)

에릭 칸토나

프랑스에서 온 남자 에릭 칸토나는 맨유 구단 역사상 최초의 비 영국인 주장이었다. 칸토나는 드레싱 룸에서 선수들한테 인기가 많았고, 프리미어리그 출범 초기에 맨유의 성공을 일군 바 있다.

퍼거슨 경은 칸토나가 맨유에 있을 시절 그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지금까지 그가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말이다. 칸토나는 맨유에서 총 185경기를 뛰었고, 82골을 넣었다.

한편 칸토나는 1996-97 시즌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했다. 50경기에서 31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절정의 폼이었던 30살 칸토나의 은퇴 이유는 이러했다. '정상에서 멈추고 싶다.'

로이 킨(1997~2005)

로이 킨

칸토나가 은퇴를 선언하고 주장 완장을 착용한 선수는 로이 킨이었다. 로이 킨은 맨유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선수들 중 한 명이고, 피치 위에서 보여주는 열정으로 팀에 사기를 불어넣어 줬다.

로이 킨은 미드필더로서 완전함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줬다. 박스 안으로 열심히 뛰어 들어가는 투지, 왕성한 활동량, 완벽한 타이밍의 태클 등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경기 내내 선보였다.

그는 홈에서 맞은 데뷔전에서 맨유 커리어 첫 골을 넣었고, 맨체스터 더비에서 골망을 갈랐을 때는 푸른 눈의 소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로이 킨은 맨유에서 총 480경기를 뛰었고, 그 가운데 51골을 넣었다. 캡틴 시절에는 네 번의 리그 우승, 두 번의 FA 컵 우승,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타이틀을 기록했다.

게리 네빌(2005~2011)

게리 네빌

게리 네빌은 퍼거슨의 아이들이라고 불린 맨유 전설의 92년도 유스 출신이다. 'Class of 92'라고 불린 이 멤버들은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필립 네빌, 폴 스콜스로 구성되었다

맨유에서 20년 동안 플레이하고, 6시즌 동안은 주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602경기를 출장하면서 팀 역대 다섯 번째로 많은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참고로 1위부터 4위는 라이언 긱스, 바비 찰튼 경, 폴 스콜스, 빌 폴크스 순이다.

그가 2005-06 리그컵에서 들어 올린 트로피는 그의 주장 직팩 수행 임무 이후 첫 트로피였다. 그리고 맨유 역대급 시즌이라고 불리는 2007-08 시즌, 대망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를 꺾고 차지한 빅이어는 그의 커리어 최고의 트로피다.

네먀나 비디치(2011~2014)

네마냐 비디치

세르비아에서 온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는 퍼거슨 경과 팬들의 사랑을 한껏 받은 선수이자 주장이다.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뛰었던 시절에는 맨유 역대 최고의 센터백 라인으로 평가받았다.

맨유의 캡틴으로서 뛰었던 첫 시즌에 19번째 리그 우승 타이틀을 따냈고, 2012-13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구단 최초의 20회 리그 우승 기록의 고지를 밟았다. 계약 만료 이후에는 FA로 인터 밀란 행에 몸을 실었다.

웨인 루니(2014~2017)

웨인 루니

루이 반 할이 처음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을 시기, 팀의 기조를 다질 주장으로 악동 웨인 루니를 지목했다. 이는 루니의 맨유 입단 10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루니는 주장으로서 FA컵, 유로파리그,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루니는 253골을 넣으며 맨유 역대 최다골의 주인공 자리에 올라 있다. 맨유 선수로서 그는 다섯 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한 번의 FA컵 우승, 피파 클럽 월드컵을 포함한 세 번의 대륙간 대회에서 우승 경력이 있다.

마이클 캐릭(2017~2018)

마이클 캐릭

루니가 맨유를 떠나 에버튼으로 이적한 뒤, 마이클 캐릭은 주장 완장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캐릭은 시즌 초반 연습 경기 후에 심장에 이상을 느껴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부정맥 판정을 받아 수술대에 올랐다. 이로 인해 캐릭은 주장으로 임명된 첫 시즌에 몇 경기 소화 못 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래도 캐릭은 해박한 축구 전술 이해도 덕분에 곧바로 코치진에 합류했다.

안토니오 발렌시아(2018~2019)

안토니오 발렌시아

발렌시아 역시 캐릭과 마찬가지로 주장으로 임명된 첫 시즌에 부상으로 시름하고 있었다. 해당 시즌에 고작 9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6-17 시즌, 루니가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탓에 발렌시아는 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그는 맨유에서 339경기에 나섰고, 25골과 62도움을 기록했다. 2019-20 시즌에는 고향 에콰도르로 돌아가 LDU 키토에서 한 시즌 동안 활약했다.

애슐리 영(2019)

애슐리 영

2017년 4월 16일, 애슐리 영은 첼시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처음으로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9년 8월, 그는 팀의 정식 주장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2020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인터 밀란으로 방출되어 주장 완장을 고작 반년만 차고 반납했다.

해리 매과이어(2020~)

해리 매과이어

201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려 온 해리 매과이어는 8천만 파운드에 가까운 거액으로 이적했다. 이는 버질 반 다이크보다도 비싼 수비수 역대 최고 이적료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리더십을 인정받아 솔샤르 전 감독으로부터 주장직을 부여받았다.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맨유 주장단을 살펴봤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주장과 최악의 주장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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