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는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리는 선수들도 있는 반면, 그 정반대의 상황에 처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선수들도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밑바닥 생활에서 축구로써 큰 성공을 거둔 선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리키 램버트
리키 램버트는 그가 10살이 되었을 무렵 리버풀 유스팀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더딘 성장으로 인해 5년 만에 팀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고 짐을 싸야했습니다. 이듬해 블랙풀의 부름을 받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2년 만에 또 다시 방출 당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램버트는 공장 일과 선수 생활을 병행해야 했고, 공장에서 받는 일당은 3만 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램버트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몸 담았던 스톡포트 카운티에서 45경기 13골을 넣으며 본인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로치데일, 브리스톨 로버스에서 223경기 87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2009-10 시즌 램버트는 본인의 인생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사우스햄튼은 3부 리그 소속이었는데, 램버트가 이적한지 3시즌 만에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켰습니다. 램버트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제이미 바디
제이미 바디는 하부 리그 소속 스톡스브리즈 파크 스틸즈에서 1군 선수로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턱 없이 부족했던 급여로 인해 낮에는 공장을 다녀야 했고, 축구는 일과가 끝난 저녁에만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에 바디는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통금 시간이 오후 6시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축구 실력 하나는 끝내줬던 바디는 2010-11 시즌 6부 리그 소속 핼리팩스 타운으로 상당한 이적료와 함께 이적했습니다. 바디는 리그 33경기 23골을 기록하며 팀을 5부 리그로 승격시켰습니다.
그 다음 시즌은 플릿우드 타운과 함께했습니다. 리그 36경기 31골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보인 바디는 다음 시즌에 챔피언십 소속이었던 레스터 시티로 이적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바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4-15 시즌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견인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36경기 24골을 넣으며 레스터 시티를 프리미어리그 왕위에 올렸습니다. 그 뒤로 바디는 아스날 등 빅클럽으로부터 오퍼가 들어왔으나 팀과 제계약을 고수했고 지금까지도 레스터 시티에서 뛰고 있습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A매치 최다 득점자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유년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으나 여러 가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진학하고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잠시 목수직을 겸했다고 합니다.
7부 리그 팀에서 시작을 알린 클로제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1999-00 시즌 분데스리가 팀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했습니다. 클럽에서의 활약이 2002 월드컵 엔트리까지 들게 했고, 해당 대회에서 5골을 넣으며 득점 공동 2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그 이후로 클로제는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베르더 브레멘, 바이에른 뮌헨, 라치오에서 351경기 179골을 넣었고, 국가대표 선수로서는 137경기 71골을 기록했습니다.
찰리 오스틴
2004년, 잉글랜드 13부 리그에서 축구 인생 시작을 알린 찰리 오스틴은 생계 마련을 위해 벽돌공으로 일하면서도 축구를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본인도 더욱 성공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을 것입니다.
2009년까지지 아마추어, 세미프로 리그에서 활약한 오스틴은 3부 리그 소속 클럽 스윈던 타운으로부터 트라이얼을 제안 받았습니다. 두 시즌 동안 65경기 37골을 넣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2부 리그의 번리로 이적했습니다. 번리에서도 뛰어난 득점 감각을 보였습니다. 성적표는 90경기 45골로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은 때는 2014-15 시즌 퀸즈파크 레인저스 시절이었습니다. 리그에서 18골을 기록할 만큼 기량이 폭발했고, 리그 득점 4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하락세를 걸었고 현재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에서 간간히 출전하고 있습니다.
앤드류 로버트슨
현재 리버풀의 왼쪽 주전 풀백인 앤드류 로버트슨도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로버트슨은 명문 셀틱 FC에서 유스 생활을 했으나 신체조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방출되었습니다.
로버트슨은 상실감이 컸지만 하부 리그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했습니다. 스코틀랜드 퀸즈 파크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한 로버트슨은 잠재 능력을 인정받고 1부 리그 던디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습니다. 이적 당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선정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습니다.
2014년 여름, 헐시티의 레이더 망에 걸린 로버트슨은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팀의 성적은 저조했지만 로버트슨 만큼은 그 중에서 빛났습니다. 그리고 3년 뒤, 위르겐 클롭 감독의 부름을 받아 리버풀로 향하게 됩니다. 리버풀에서 로버트슨의 활약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입니다.
닉 포프
닉 포프는 논 리그 소속 베리 타운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서며 골키퍼로서의 기량을 닦았습니다. 당시 감독은 포프가 내가 직접 지켜봐 온 선수들 가운데 가장 유망한 선수라며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프의 선수생활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3부 리그 찰튼 애슬레틱으로 이적했으나 반복되는 임대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포프가 찰튼 소속 선수로 임대 이적만 6번을 했습니다. 매번 팀을 옮겨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포프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자신의 진가를 발견한 프리미어리그 승격팀 번리로 이적해습니다. 이적 초기에는 작은 컵 대회에만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기존 주전 골키퍼의 장기 부상으로 기회를 잡게 된 포프는 14경기 8실점, 클린시트 8회라는 놀라운 선방력을 과시해 그 후로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2019-20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 골키퍼로 선정돼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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