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공격수의 왕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탄생한 슈퍼 스타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최고들만을 엄선했습니다. 지금부터 맨유 스트라이커 계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데니스 로(1962~1973)
허더즈필드 타운 출신의 공격수 데니스 로는 그의 나이 20세도 안 되었을 무렵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100경기 이상을 뛰었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오래전부터 맨유의 레전드 감독 맷 버즈비는 그를 토리노 FC에서 맨유로 데려옵니다. 그는 맨유 이적 첫 시즌부터 리그에서만 23골을 터뜨렸고, 바비 찰튼과 함께 뮌헨 참사 이후 추락했던 팀을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 조지 베스트가 팀에 합류한 뒤, 그 유명한 베스트-로-찰튼 삼위일체가 형성됩니다.
로는 클럽에서의 커리어가 네임 벨류에 비해서 화려한 편은 아닙니다. 리그 우승 2회, 유로피언 컵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 커뮤니티 실드 우승 2회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맨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선수이며, 1964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정도로 개인 기량은 월드 클래스 선수입니다.
데니스 로 맨유 시절 스탯
-404경기 237골
커리어 하이
-1963-64 시즌 42경기 46골
마크 휴즈(1980~1986, 1988~1995)
맨유에서만 15년을 뛴 레전드 마크 휴즈는 그의 나이 15살 맨유 유스팀에 입단한 뒤, 2년 간의 생활을 마치고 1군 선수로 등록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맨유에는 확고한 주전 스트라이커가 있었기에 휴즈는 3년이란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팀 내 미드필더의 부상으로 연쇄적인 선수 이동을 해야 했던 맨유는 공격수 한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휴즈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시즌 남은 11경기 동안 4골을 기록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이후 4년 동안 팀의 주전 공격수로서 활약했다가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라리가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고, 1년 뒤 바이에른 뮌헨 임대행까지 강행했으나 이마저도 실패했습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휴즈는 방출 통보를 받았고 맨유로 리턴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맨유에서는 이전과 같은 기량을 선보였고, 복귀한 8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영광을 맨유와 함께 했습니다.
마크 휴즈 맨유 시절 스탯
-473경기 163골
커리어 하이
-1984-85 시즌 55경기 24골
에릭 칸토나(1992~1997)
'악마의 재능' 에릭 칸토나는 리즈에서 1 시즌 동안 엄청난 활약을 했고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러나 구단 측에서 그의 다혈질 성격을 견딜 수 없어 맨유에 120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 아래에서 더욱 무서운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은 리즈에 두고 오지 못했습니다. 1995년 1월, 크리스탄 팰리스전에서 레드카드를 부여받고 벤치로 돌아갈 때 자신을 향해 야유했던 상대 서포터를 향해 그 유명한 '쿵후 킥'을 시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칸토나는 9개월 출장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맨유 서포터스들은 칸토나를 내쳐야 한다고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선수에게 인성 문제가 있을 경우 가차 없이 내치기로 유명한 퍼거슨 감독은 칸토나와 끝없는 면담을 통해 그를 팀에 잔류시켰고, 칸토나 역시 퍼거슨의 행적에 감동받아 맨유에 뼈를 묻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징계 기간을 끝마친 칸토나는 이전과 같은 환상적인 플레이로 복귀하자마자 더블을 달성했고, 향후 팀의 주장직을 맡을 만큼 리더십면에서도 성장했습니다.
에릭 칸토나 맨유 시절 스탯
-185경기 82골
커리어 하이
-1993-94 시즌 49경기 25골
앤디 콜(1995~2001)
1998-99 시즌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트래블 멤버 중 한 명인 앤디 콜은 뉴캐슬에서 엄청난 골게터로 존재감을 뿜다가 1994-95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70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맨유로 이적했습니다.
이적 이후 곧바로 팀의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찬 콜은 입스위치 타운전에서 5골을 몰아치며 팀의 9-0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이 골로 콜은 프리미어리그 단일 경기에서 5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적 첫 시즌, 시즌 도중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18경기에서 12골을 넣은 콜은 제 몫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3 시즌 뒤, 세기말에 맨유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콜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면서 많은 골을 넣은 콜은 프리미어리그, FA컵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모두 들며 트레블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앤디 콜 맨유 시절 스탯
-275경기 121골
커리어 하이
-1997-98 시즌 45경기 25골
뤼트 반 니스텔로이(2001~2006)
호나우두, 티에리 앙리, 안드리 세브첸코와 더불어 2000년대 세계 4대 스트라이커라 불린 뤼트 반 니스텔로이는 커리어 대부분을 맨유와 함께 하진 않았으나 맨유의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활약을 한 선수입니다.
지금까지의 맨유 선수들 가운데 슈팅 대비 득점이 가장 많았던 반 니스텔로이는 이적 첫 시즌, 동료 선수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리그에서만 23골을 터뜨리는 기염을 보였습니다. 그다음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003-04 시즌부터 그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기 전까지 맨유의 성적은 암울했습니다. 그래도 반 니스텔로이의 득점력만큼은 식지 않았습니다. 반 니스텔로이는 큰 부상을 당했던 2004-05 시즌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20골 이상을 집어넣었습니다. 폼이 크게 하락했다고 평가받는 2005-06 시즌도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했을 정도였으니 골문 앞에서 그의 결정력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뤼트 반 니스텔로이 맨유 시절 스탯
-219경기 150골
커리어 하이
-2002-03 시즌 52경기 44골
웨인 루니(2004~2017)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역작 웨인 루니는 16살에 에버튼 1군 선수로서 데뷔해 이름을 알렸고, 당시 리그 강호였던 아스날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 최연소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2004년 여름, 18살의 루니를 무려 2,700만 파운드에 맨유로 데려왔습니다.
루니는 맨유 데뷔 시즌에 앞서 소개했던 반 니스텔로이와 함께 투톱을 이루며 파괴력을 보이며 리그 11골 4어시스트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루니는 더욱 안정적이고 저돌적인 플레이로 선전하며 암흑기를 맞이했던 맨유를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맨유 은퇴 시즌인 2016-17에는 바비 찰튼의 골 기록을 넘기며 구단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습니다.
루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는 선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하는 이유는 꾸준했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본인의 엄청난 운동 능력을 앞세워 팀에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고, 이는 맨유에게 수많은 트로피와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제공했습니다.
웨인 루니 맨유 시절 스탯
-559경기 253골
커리어 하이
-2009-10, 2011-12 시즌 44경기, 43경기 34골
로빈 반 페르시(2012~2015)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속삭였다." 맨유 이적 직후 로빈 반 페르시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반 페르시는 맨유 이적 전, 아스날의 주장임과 동시에 팀의 가장 믿을맨이었고 아르센 벵거 감독 역시 그를 간절히 붙잡고 싶었지만 결국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위해 라이벌 맨유로 떠났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임팩트를 발휘한 반 페르시는 맨유 데뷔 첫 시즌 만에 골든 부츠와 그토록 바라던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반 페르시는 맨유에서 3 시즌밖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경기당 1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골 결정력을 선보이며 단기간 임팩트로는 역대 이적생 중 최고입니다.
로빈 반 페르시 맨유 시절 스탯
-105경기 58골
커리어 하이
-2012-13 시즌 48경기 30골
마커스 래시포드(2016~)
맨유의 현재이자 미래인 마커스 래시포드는 2015-16 시즌 유로파리그 32강 2차전, 안토니 마샬을 대신해 깜짝 데뷔했습니다. 호리호리한 몸에 등번호 39번, 누가 봐도 1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유망주입니다. 그런데 그 유망주는 데뷔 경기, 팀이 뒤쳐지고 있던 상황에서 동점골과 결승골을 넣으며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경기 아스날전에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9살이란 어린 나이에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몇 시즌 동안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2018-19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와 공격 스탯을 비교당하는 등 팬들 조롱 거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9-20 시즌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파괴력 있는 스피드와 골 결정력을 앞세워 팀 승리에 일조했고, 시즌 44경기 22골 11어시스트라는 놀라운 스탯을 올렸습니다.
과연 앞으로 래시포드가 맨유의 주전 공격수로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맨유 팬들로서 하나의 흥밋거리가 될 것입니다.
마커스 래시포드 스탯
-214경기 67골
커리어 하이
-2019-20 시즌 44경기 22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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