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스트 일레븐 스쿼드를 구성해 글을 작성하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지네요.ㅎㅎ그래서 이번에는 지난 맨유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이어 '21세기 한국 국가대표 베스트 일레븐'이라는 주제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선정 기준은 클럽과 대표팀에서의 종합적인 활약도입니다.
GK
대한민국 명실상부 NO.1 골키퍼인 이운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했습니다. 이운재는 k리그 통산 410경기 출장, 425 실점을 기록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전에는 이운재보다 김병지가 골키퍼 경쟁에서 앞섰습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이운재의 안정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운재의 단점은 반사신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운재에게는 뛰어난 예측력이 있었습니다. 이 강점은 승부차기에서 빛을 봤습니다. 이운재는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을 비롯해, 수많은 페널티킥 선방을 해왔습니다. 이운재는 90%가 넘는 페널티킥 선방률을 자랑합니다.
DF
김태영, 홍명보, 최진철로 이어지는 3백은 그야말로 철벽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 역대 최강 센터백 라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김태영은 국민은행과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했습니다. 전남 드래곤즈에서는 10년을 뛰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습니다.
김태영의 플레이 스타일은 파이터형이지만 현역 생활 동안 퇴장은 없으며, 옐로카드 역시 33장에 불과합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는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대를 착용하고 경기를 소화해 국민들의 감동을 샀습니다.
홍명보는 포항(제철 아톰즈 → 아톰즈 → 스틸러스), 벨마레 히라쓰카, 가시와 레이솔, LA 갤럭시에서 뛰었습니다.
홍명보는 아시아의 프란츠 베켄바워라고 불립니다. 홍명보는 3백에 최적화된 선수로서 그중에서도 스위퍼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홍명보의 진가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드러났습니다.
카리스마 리더십을 장착한 홍명보는 뛰어난 빌드업 능력으로 커맨드형 수비수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1대 1 수비 상황에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진철은 상무 축구단(군 복무)을 제외하면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만 11년 동안 뛴 원 클럽맨입니다.
선수 시절에는 187cm의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을 장악하는 수비수였습니다. 1998, 1999년에는 팀의 공격수 부재로 공격수로 뛰어 62경기 17골 8도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 미로슬라프 클로자 같은 위대한 공격수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 정도로 끈기 있는 수비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좌영표-우종국'은 지금까지도 많은 축구 팬들이 그리워하는 조합입니다. 이들 이후로 제대로 된 좌우 윙백 조합을 찾지 못한 것은 한국 축구의 숙제입니다.
왼쪽 윙백 이영표는 안양 LG 치타스, PSV 에인트호번, 토트넘 홋스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알 힐랄,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뛰었습니다. 이영표는 2000년대 초·중반 몇 안 되는 유럽파 리거 중 한 명입니다.
이영표는 오른발잡이지만 왼쪽에서 좋은 플레이를 했습니다. 오버래핑했을 때는 전매특허인 스텝오버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절묘한 크로스를 올리고는 했습니다.
또한 이영표는 성실함의 대명사로서 자기 관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많은 축구 후배들로부터 영감을 샀게 했습니다. 이영표는 꾸준한 몸 관리로 37세의 나이에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은퇴했습니다.
오른쪽 윙백 송종국은 부산 아이콘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알 샤바브, 울산 현대 호랑이, 텐진 터다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송종국의 주 포지션은 오른쪽 윙백입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수비형 미드필더나 윙 포워드를 소화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습니다.
송종국은 단일 월드컵 최장 출전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무려 687분을 소화했습니다. 송종국의 이런 열성적인 모습은 월드컵 종료 후 한국 선수들 가운데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로 낙점되었습니다.
MF
기성용은 서울 셀틱, 스완지 시티, 선덜랜드(임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고, 현재는 마요르카와 1년 단기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기성용은 볼 배급에 특화되어 있는 선수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 국가대표와 소속 팀에서 활약했습니다. 경기 중 드리블과 패스를 통한 경기 템포를 조절한다는 점도 기성용의 큰 장점입니다.
또한 3백에서 종종 스위퍼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기성용의 주 무기인 정확한 롱패스는 후방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공격 전개를 가능케 했습니다. 기성용이 스위퍼로 나섰을 때는 가끔 홍명보 못지않은 플레이를 했습니다.
유상철은 건국대학교, 울산 현대,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약했습니다. 유상철은 김주성과 더불어 역대 K리그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부문 모두 베스트 11에 선정된 엄청난 선수입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유상철은 무려 9개의 포지션을 소화하며 4강 신화를 이룬 주역입니다. 대회 종료 후 유상철은 홍명보와 함께 FIFA 월드컵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유상철의 체력, 오프 더 볼, 패스, 슈팅, 태클 능력은 매우 우수했습니다. 특히 유상철의 오프 더 볼 플레이는 많은 감독들로 하여금 그를 경기에 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FW
손흥민은 일찍이 독일로 떠나 함부르크에서 데뷔했습니다. 이후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팀을 옮겼고, 현재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한국 역대급 선수로서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중입니다.
손흥민의 개인 수상 이력은 화려합니다. 수상 내역에는 토트넘 홋스퍼 2010년대의 골(2019-2020 시즌 16라운드 번리전 골), 아시아 베스트 풋볼러, 런던 풋볼 어워즈 올해의 선수 및 골, 2019 발롱도르 22위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손흥민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강력한 슈팅을 장착한 선수입니다. 토트넘 홋스퍼 이적 초기에는 오프 더 볼 움직임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포체티노 감독의 지도 하에 지금은 손흥민의 강점 중 하나로 변화시켰습니다.
황선홍은 바이어 레버쿠젠, 부퍼탈, 포항 스틸러스, 세레소 오사카,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와 레이솔, 전남 드레곤즈에서 뛰었습니다. 현재는 대전 하나 시티즌의 감독입니다.
황선홍은 A매치 103경기 50골로 차범근에 이어 대한민국 역대 2위입니다. 그리고 한일전에서의 황선홍은 승리 보증 수표였습니다. 황선홍은 그가 뛴 한일전에서 한국은 단 한 번의 패배 조차 경험하지 않았고, 그는 5번의 골을 넣었습니다.
황선홍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타깃형 스트라이커로서 최전방에서 버텨주고 싸워주는 플레이에 능했습니다. 35세의 황선홍은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해 노장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박지성은 교토 퍼플 상가, PSV 에인트호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당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과 아울러 시대를 구가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은 축구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박지성은 말 그대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입니다. 박지성은 아시아인 최초 챔피언스리그 결승 선발 선수이며, 대표팀에서는 월드컵 3연속 득점(2002, 2006, 2010)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박지성은 대표적인 언성 플레이어로 공수에서 팀의 살림꾼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또한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로서 헌신적인 수비와 근성 넘치는 플레이로 루니와 호날두 같은 톱클래스 선수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SUB
사진=다음뉴스, fifa, afc, sky sports, transfermarkt, eurosport, the spor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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